노이로제와 연합된 인지 기능 저하에 대한 회복요법에 대한 한 방법
배철님의 현상학적인 견지와 상담심리학적인 견지를 모두 탁월하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생애 전반에 걸쳐서 난국이 심화되어 해결이 안된 것도 아니고, 뇌 손상과 같은 특성보다는 견디기 어려웠던 난국을 오랫동안 경험하시면서 마음의 아픔이 있으신 경우니까요. 이 경우에 신경적인 환원을 하면 존엄성마저도 해가 되니, 배철님께서 통찰하신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환원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아동학대의 경우 아이가 경험한 것이 친밀한 분들이 실행한 것이면 여기에 신경적인 것을 강조하면 안되죠.
정신분석학에 대해 찬밥신세라고 할때의 의미가 여러 맥락에서 다르게 이해되네요. 일종의 통쾌한 처우의 한 방식 같기도 하고 학문적으로 정식화된 인식을 누구나 직관할 수 있었으나 이에 대한 반대가 불가능해서 사후처리적으로 이해할때, 프로이트와 라캉 계열의 정신분석학에 대해 찬밥신세라고 하는 것 같애요. 그래도 상담을 전공하신 분들도 이를 알고 계셔서 이런 것이 내담자의 체험일때, 이를 근원부터 치료해주시는 방법을 찾기가 애매해지네요.
상담자분들은 내담자가 누구인지도 아셔야 하고, 뭔가 정말로 거대한 무엇 (공공성의 층위) 이 끼어들면 내담자에 대한 담당 의지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이를 이해하고 맞춰가는 과정에서 내담자가 경험하는 것은 고난의 연속선상일 수가 있어요. 2, 3세때부터 학대를 받아온 경우, 상담자분들의 상정을 이해하고 맞추어가는게 오히려 내담자가 뭔가 이상이 있어서처럼 되기도 하는데요. 서구에서는 잘 알려진 prozac nation과 같은 논의도 있는 것을 보면 정말로 질식해서 죽어버려도 아무도 모르는 그런 전개가 되기도 합니다.
제 경우 2, 3세때부터 있어왔던 체현 도전에 의해 조건이 맞아들어가면 남들이 시기하고 투기했던 평가적 체현이 신체에 각인되어 열등하게 변하는 체험도 했는데요. 이 경우에 은어로 “물밑작업”이라고 하는 표현이 지닌 외연은 상상도 못할 정도의 극박함인데, 이 경우에도 프로이트 찬밥신세와 같은 인식이 된다는 것은 저와 같은 체험을 한 분들이 부당하게 찬밥신세가 되는 것을 누구나 직관해서입니다.
인지 기능 저하도 뇌가 정상이라고 할때, 전문가분들은 심인성 또한 뇌에 어떤 영향이 가해진다고 하는데 이 경우에도 배철님의 견해가 필요하게 되죠. 이보다 진전이 되면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보여도 세세한 인지 기능이 자기가 속한 사회적인 그룹의 평균보다도 낮아진 심각한 능률 저하가 되기도 하네요.
생명 지속에 필요한 호흡, 사지움직임, 간단한 대화, 심장박동 등은 되더라도, 자기의 내적 표상을 외적 표상과 비교하면서 공부하는 효율이 저하되고, 전체적 시야와 부분적 시야를 넘나드는 효율적인 공부가 안되게 되고, 기억이 입력되도 2주만에 기억 리콜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tDCS나 바이노럴 비트를 가동해야 되기도 하네요.
이 경우에도 회복이 완전치 않아도 인지 기능이 일부라도 수행되면, “스마트폰 쓸 수 있잖아”와 같은 인식은 전공자분들이 하셔도 때로는 이해가 안되는 경우 같애요.
이 글을 참조하시면 제가 왜 당돌하게도 보이게 하는 의견 제시를 하는지 아실 것 같애요.
물론 이게 참이어도 배철님이 말씀하신 생물학적 요인만 강조해서는 안된다는 말씀과 상충하는게 아니라, 내담자들의 상황이 다른 것이네요. 이경우에도 프로이트 찬밥신세 강등 문화가 존재하는 이유가 일반화의 과도한 의지가 프로이트 이론에 있어서, 이를 내담자가 짊어지는 것을 직관하고 형성된 문화인데, 물론 이게 직접 지시가 되면 상담전문가분들도 곤란하시니, 저와 같은 내담자는 최대한 맞추어갔는데 이게 또 이그러지기도 하네요.
뭔가 업계라는 것과 같은 전개가 되면 “막내아들” “모친이 드러내놓고 학대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 “난국을 구어체 영어로 설명을 잘 못함” “공공성의 대상도 되어봄” “전에 사귀던 친구들과 요즘은 안만남” “교회에서도 뭔가 일이 있었음” “연애도 실패함” “해킹도 받음” “체현이 말할때 횡설수설인데 회복되었으나 이 경과가 안알려짐” “이에 대해 복수심보다는 어떻게든 진실을 알리고 싶으나 prozac nation과 같은 일들이 겹침” “체험담보다 학문적으로 말하려고 함” 등등의 심리적인 것이 해결이 안되면 말씀해주신 노이로제 상태가 되는데, 프로이트적으로 보면 순수하게 프로이트를 적용하시는 분들도 리비도적인 것에 의해 일으켜진, 언어만 바뀐 요법을 쓰시기도 하셔서 심각하네요.
이렇게 되면 삶의 흐름이 달리 이해되고 분노까지도 남들이 시키는대로 해야 하게 되는데 이쯤되면 마음의 아픔이 신체적으로도 전이가 됩니다. 이를 체계적 둔감법으로 소거한다는게 언어적으로 어떻게 이해가 되고 노이로제도 그렇네요. 많은 경우 중증 내담자는 언어에 대해 파라노이아처럼도 되는데 이는 2, 3세때부터 있어왔던 삶의 고난이 직접 지시보다는 은어로 발언되어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남들이 일어날 수 없다고 여기는 현실을 실재로 일어남을 체험해서라,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보여도 그 전과정을 보면 말수가 없어지고 표정변화도 없고, 몸은 느릿하고, 누군가 위기 상황을 완곡하게 암시해도 갑자기 떠벌리고, 체험 설명도 횡설수설 되고… 등등의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저도 겪어온 일입니다.
길게 안말하면 과정상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 길게 말합니다. 전 이말을 이해하는데 많은 경우 읽으시는 분들이 반응하실때의 반응도 프로이트 찬밥신세와 같은 학문 비판을 적용해주시는 이유가 되죠.
여튼 이렇습니다. 이보다 더한 것도 지난 40년간 체험해봤으나 전 결국 구명성을 학문으로 구체화했네요 ^^
한국 융 학파 정신분석가님들이 프로이트 학파와 차이점을 언급하시고 강연을 하시는 것도 그렇고 내담자가 평소에 장난꾸러기 같아도 그의 본래성은 지속되고 고난 체험 이후에 체현이 확장된 것에 따라붙는 의심에도 불구하고 실재로 보면 의리도 지킬 줄 알고 구명도 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도 이를 인정받았네요.
그래도 모친이 지속하시면 오래전에는 깊은 상실감에 빠졌는데, 최근 11년간 인지 기능 저하는 겹쳐도 신경배선이 조정되니, 공부 효율은 줄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어지기도 하네요. 이것도 한편으로만 볼게 아니라, prozac nation과 같은 비판의 속뜻을 알면 됩니다. 제가 참조한 토론토대 인지과학 교수님이 상담전문가분들과 토론한 논의에서도 상담전문가이신 분이 상담학계가 업계인가 아닌가의 논의를 해주셨는데 이 경우에도 업계 측면, 업계가 아닌 측면이 있음을 장난꾸러기 같은 행동을 종종하는 내담자도 알 수 있어서 맞추어가는게 되는 것이네요.
배철님의 현상학적인 탁월하심도 이를 인정해주시기 때문 같애요.